일상다반사

자가용 없어 창피하다는 아들

Artanis 2010. 10. 30. 09:22
Peugeot 307
Peugeot 307 by Jörg Dickmann 저작자 표시비영리


어느 초등학교 교실안,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퍼집니다.
"집에 자가용 있는 사람 손들어~"
"전화기 있는 사람?"
"냉장고?"
"아빠 직업이 회사원인 사람?"
"아빠 직업이 OOO인 사람?"

......

"손 안든 사람?"

한 친구가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는 마지 못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청소..."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뭐라고? 청소부?"

저의 초등학교 시절, 교실의 풍경입니다.
친구 녀석의 아버지는 환경미화원 이셨습니다.
그것이 부끄러웠나 봅니다. 저도 몰랐었으니까요. 
그런데 선생님은 눈치도 없이 '청소부'라고 큰소리로 외쳐 버리셨습니다.
얼굴이 빨개지는 친구 녀석의 모습에 지켜보는 저는 더 부끄러워졌습니다.
저는 거짓말을 했거든요.

초등학교 시절 학년이 바뀌면, 반드시 치뤄야할 통과의례가 있었는데
그것은 담임선생님의 이런 질문에 손을 드는것이었습니다.
교실에 어린 학생들을 앉혀놓고 '손들어 설문조사'가 이루어 졌습니다.
학생들은 서로서로 누구네 집에 자가용이 있는지, 전화기가 있는지,
아빠 직업이 무엇인지, 부자인지, 가난한지 알게 되는 것이기에 
없는게 많았던 저에게는 부끄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있지도 않은 전화기가 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하게 된것을 엄마탓으로 돌렸습니다. 엄마에게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선생님이 물어봤던 살림살이들중 집에 없는건 다 졸라댔습니다. 
저는 없는게 많았던 우리집을, 부모님을 원망했었습니다.

그래도 자동차는 목록에서 빠졌습니다.
자동차를 가진 친구는 한 반에 한 두명 있을까 말까 한데다 감히 졸라댄
다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생필품같은 흔한 존재가 되었지만...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저는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들이 회사에 있는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더니 자꾸 차를 사자고 졸라 댑니다.

"아빠~ 물어볼게 있는데 카렌스 사면 안돼? 내가 인터넷에서 봤는데 싸더라~"
"안돼~ 지금은 차 필요없어"
"아빠~ 그럼 싼타페는 안돼?"

저는 그 흔한 차가 없습니다.
원래는 오래된 크레도스가 있었는데, 
타지도 않으면서 유지비만 많이 드는 것 같아 없애 버렸습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요즘들어 차를 사자고 졸라대는 일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원래 차를 좋아하는 녀석이라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그러다 몇 일 전 아들이 왜 자꾸 차를 사자고 졸라댔던 것인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차를 사자고 졸라대던 아들의 입에서 "창피하다"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입니다.

저는 기분이 상했습니다.
"뭐~~~? 창피해?"
"아니.. 아빠~ 말이 잘못 나와떠~"

녀석은 말이 잘못 나왔다고 수습하려고 합니다.
무슨 말인지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녀석이 울먹거리기 시작합니다.
무슨 사연이 있긴 있나봅니다.

"무슨일인지 아빠한테 이야기해봐~ 아빠가 들어줄께"
녀석은 그제서야 훌쩍훌쩍 울먹거리며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합니다.

"친구들이 자꾸만 자동차 자랑만해~ 엉엉엉~"
울음보가 터져버렸습니다.
"우 우리 집에 자동차 없는데 친구들이 자동차 이야기 하니까 난 말 못해~ 엉엉엉"
"그것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재민이가 제일 많이 말해~ 엉엉엉"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요즘들어 자꾸만 자동차 자랑을 하나봅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친구들도 덩달아 자동차 자랑을 하게 된것이구요.
그런데 집에 차가 없는 아들은 소외감이 느껴져 자존심이 상했던 것입니다.

어떤 상황인지 대충 알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알아낸 사실인데 아들은 결국 거짓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미 없애 버려, 있지도 않은 아빠의 똥차를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제가 거짓말을 했던 그 교실이 떠올랐습니다.
철부지 였던 나는, 나를 거짓말 하게 만든 부모님을 원망했었는데,
아빠가 된 나는 아들을 거짓말하게 만들었습니다.

"자동차가 없는건 창피한게 아니야 아빠는 지금은 자동차가 필요가 없어서, 나중에
더 좋은차 사려고 안사는거야"

거짓말 한것에 대해서 혼내지는 않았습니다.
어릴적 나 처럼 이미 충분히 부끄러웠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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